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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가 식구들 꼭 南으로 데려올게" 3년만에 지킨 남편의 약속

랑주아톰 2011. 3. 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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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가 식구들 꼭 南으로 데려올게" 3년만에 지킨 남편의 약속

2009년 12월 12일 오전, 어선(철선)이 4~5m높이의 파도를 뚫고 서해를 달리고 있다. 검푸른 바다와 짙푸른 하늘이 흔들리는 시야에 교대로 다가온다. 김성은 목사가 타는 입술을 무전기에 갖다댔다. “성국아, 대답 좀 해라.”

 

시커먼 파도 사이로 작은 목선이, 그 갑판 위로 송성국씨가 드디어 보였다. 중국 동북부 항구로부터 21시간을 내달린 목선은 약속 지점에 9시간째 버티고 있었다.

 

한국 출항 18시간, 김 목사의 어선은 중국 배로 다가갔다. 두 배는 성난 파도에 서로 부딪혀 격한 파열음을 냈다. 송씨는 중국에 가서 데려온 아내 전수련(28)씨의 남동생(21), 이모(54), 이종여사촌 두 명(30·27) 등 처가가족 넷을 무사히 우리 배로 옮겼다. 가족들은 바다 위로 15시간을 더 달려 군산항에 도착했다.

 

▲ 탈북자를 한국배로 옮겨준 중국배가 다시 중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송씨는 1999년 탈북했고 2004년 중국 공안(公安)에 잡혀 북송돼 혹독한 고문을 치른 뒤 2006년 또 탈북해 탈북 브로커를 통해 라오스·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아내 전씨는 북한에서 간호사였다. 모친(52)과 국경을 넘다가 인신매매 브로커에게 붙들려 어머니와 이별했고, 옌지(延吉)에서 파출부 벌이로 돈을 모아 태국을 거쳐 2006년 9월 한국에 왔다.

 

태국 이민국에서 처음 만난 송씨와 전씨는 한눈에 상대에게 끌렸다. 두 사람은 2008년 8월 천안 갈렙선교회 내 두 평(6.6㎡)짜리 골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간판회사 직원 송씨, 간호학과 학생 전씨 사이에 아기가 생겼다. “임신을 하니 북에 둔 가족이 더 그립다”는 아내에게, 남편은 “내가 모두 구해 오겠다”고 약속했다.

 

2009년 4월, 송씨는 장모의 거처를 알아내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 갔다. 그러나 브로커에게 속아 라오스에서 장모를 잃었다. 그때 ‘해상접선 탈북’을 착안했다. 송씨는 그해 9월 갓난 아들을 뒤로 한 채 중국 내 북한 접경 마을로 갔다. 2009년 12월 10일 송씨는 중국 배를 타고 출항했다. 처가식구 넷은 기름 냄새 뿜는, 허리도 못 펴는 엔진실에 끼여 앉았다.

 

처가 식구를 한국 배에 옮겨 태운 뒤 송씨가 타고 온 중국 목선은 물이 새고 엔진이 꺼졌다. 송씨는 중국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출국할 계획이었다. 송씨가 탄 배는 처가식구가 옮겨 탄 어선에 밧줄로 묶여 한국으로 왔다.

 

 

 

 

2. [北주민 해상 탈출] 밤바다 두 선박 숨죽인 '도킹'… 9명, 15분 만에 '자유의 배'로

탈북민 출신 송성국씨… 김성은 목사와 연합 작전

北 탈출 원하는 사람 모아 中 선박으로 실어 날라… 2009년에도 4명 구해

24일 새벽 4시 군산항에서 210㎞쯤 떨어진 공해(公海)에선 달빛만 출렁거렸다. 탈북 주민 9명을 구하러 군산을 떠난 송성국(27)씨가 무전기를 조타실 바닥에 내던졌다. 무전기 없이 망망대해에서 작은 선박을 찾는 일은 불가능한데, 중요한 순간 먹통이다. 송씨는 김성은 목사와 갑판에 올라 외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애타는 목소리가 밤바다를 울렸다. 바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외침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30여분 뒤 암흑 밤바다에 작은 불빛이 보였다. 송씨와 김 목사가 환성을 질렀다. 파고는 0.5~1m, 하늘이 도운 듯 잠잠했다고 한다. 두 선박은 조용히 물살을 헤쳐 나란히 마주 섰다. 밧줄로 배를 동여매고 탈북 주민 9명이 아이·여성·남성 순으로 배를 갈아탔다.

 

▲ 24일 새벽 서해상에서 탈북민 지원활동가 송성국씨가 탈북 주민 9명을 싣고 중국을 떠나온 배를 바라보고 있다. 송씨는 2009년 첫 해상접선 탈출 때는 탈북 주민과 함께 중국에서 배를 타고 출항했고, 이번에는 한국에서 출발한 배로 주민을 태워 돌아왔다. /김성은 목사 제공

여섯 살 소녀가 먼저 이쪽 배로 건네졌다. 아이는 배를 넘자 심한 뱃멀미로 토하기 시작했다. 구토를 마친 아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이 엄마(37)가 얼른 건너와 아이를 부둥켜안았다. 김모(37)씨를 마지막으로 선박을 붙여 9명을 건네받는 데 15분이 걸렸다고 한다. 잔잔한 밤바다에서 잠시 마주했던 두 선박은 뱃머리를 돌려 각자의 길을 향해 내달렸다.

 

탈북 주민은 인민 열사 직계후손 김모씨 일가족 3명, 다른 이모(37)씨 일가족 3명, 평양 군부대 소속으로 활동한 함모(36)씨, 탈북 1년이 넘은 장모(45)씨와 이모(여·29)씨 등 9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함씨는 "화폐개혁 이후 거짓만 늘어놓는 북한 정부가 싫어 도망쳤다"고 했다고 김성은 목사가 전했다.

 

탈북민 출신으로 탈북동포 지원 활동을 벌이는 송씨는 지난해 11월 중국으로 가 선박을 구했고, 동북부에서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 주민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씨와 김 목사는 2009년 12월 12일에도 공해상 접선 방식으로 송씨의 아내 전수련(28)씨의 남동생(21), 이모(54), 이종여사촌 두 명(30·27) 등 처가 식구 네 명을 구해왔다. 송씨는 첫 해상 도킹 당시 중국에서 배를 타고 김 목사 일행이 승선한 배를 만났다. 당시 두 배는 높은 파도 때문에 밀착 과정에서 서로 부딪혀 중국 측 선박이 파손됐고, 엇박자로 출렁이는 두 배 사이를 넘느라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다.

 

송씨와 처가 가족이 탄 배는 중국의 한 항구에서 출항한 지 21시간 만에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고, 9시간 동안 그 일대에서 기다린 끝에 김 목사 일행을 만났다. 그리고 15시간을 더 달려 출항해 바다에 머문 지 총 45시간 만에 군산항에 도착했다.

 

송성국씨는 1999년 탈북해 중국에서 막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2004년 중국 공안(公安)에 붙잡혀 북송돼 혹독한 고문을 치렀지만 또 탈북했다. 그는 2006년 탈북 브로커를 통해 라오스·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아내 전씨는 북한에서 간호사였다. 희망 없는 삶에 지쳐, 모친(52)과 국경을 넘었다. 인신매매 브로커에게 붙들려 어머니와 이별했고, 옌지(延吉)에서 파출부 벌이로 돈을 모아 태국을 거쳐 2006년 9월 한국에 왔다.

 

송씨는 2009년 11월 북한 국경을 넘은 처가식구 넷을 차량에 태워 2박3일간 고속도로를 달려 수천㎞ 떨어진 항구로 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10일 중국 배를 타고 출항했다. 처가식구 넷은 기름 냄새 뿜는, 허리도 못 펴는 엔진실에 끼여 앉았다고 한다.

 

전씨는 최근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은 후 치료 중이다. 전씨의 어머니는 2009년 말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딸을 간병하고 있다. 전씨의 남동생은 건설 노동자, 이종사촌 둘은 대학 신입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