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것

US오픈 우승 22세 매킬로이

랑주아톰 2011. 7. 10.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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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바텐더의 아들, 세계 골프를 취하게 하다

US오픈 우승 22세 매킬로이… 그를 키운 뜨거운 父情

아버지는 강했고 - 오전엔 화장실 청소부 오후엔 골프장 바텐더, 밤엔 럭비클럽 바텐더로… '스리 잡'하며 레슨비 지원

아들은 즐겼고 - 21개월, 손에 첫 골프채 2살, 드라이브샷 40야드 9살, 첫 홀인원 성공

주근깨 청년, 마침내 황제로 - 역대 최소 268타, 역대 최다 16언더파… 각종 기록 다 갈아 치워

 

▲ 매킬로이(오른쪽)와 아버지 타이거 우즈를 동경하며 자란 '타이거 키드', 22세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타이거 우즈 전성기 때 기록을 갈아 치우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콩그레셔널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제111회 US오픈 골프대회에서 매킬로이는 역대 최소타 우승, 역대 최다 언더파 우승 등 각종 대회 기록을 새롭게 작성하며 우승해 세계 골프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6언더파 268타의 경이적인 스코어를 올리며 2위 제이슨 데이(호주·8언더파)를 8타 차이로 제쳤다.

 

외신들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US오픈이 매킬로이의 원맨쇼로 둔갑했다"고 전했고 동료들은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를 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1997년 21세의 흑인 청년 타이거 우즈(미국)가 마스터스에서 최연소 우승할 때와 비슷한 충격파였다. 어린 시절 타이거 우즈를 바라보며 꿈을 키운 그는 무섭게 성장해 우즈의 '골프 황제' 자리를 넘보게 됐다.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홀리우드(Holywood)에서 태어난 매킬로이는 집이 골프장과 가까웠다. 생후 21개월에 처음 플라스틱 골프채를 잡아봤고 두 살 때 드라이브샷이 40야드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역 방송에 나가 칩샷으로 골프공을 세탁기에 집어넣는 묘기를 선보인 것이 네 살 때였다. 집앞 마당에 작은 그린을 만들어놓고 퍼트 연습을 하면 이웃 사람들이 하도 구경을 와서 아예 마당을 빙 둘러 2.4m 높이의 담장을 세웠다.

 

▲ “아버지”와락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골프 천재’도 아버지 앞에선 어리광부리는 아들일 뿐이다. 20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콩그레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111회 US오픈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매킬로이가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AP 뉴시스 타이거 우즈는 어린 시절부터 매킬로이의 우상이자 목표였다. 1997년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을 당시 여덟 살이었던 매킬로이는 우즈의 사진으로 방 전체를 도배했다. 2000년 우즈가 US오픈에서 당시 최다 언더파 기록(12언더파)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 열한 살 매킬로이는 미국에서 TV 중계를 지켜봤다. 아홉 살에 홀인원을 기록했던 매킬로이는 이미 '북아일랜드의 골프 천재(phenom)'로 불리고 있었다.

 

매킬로이는 골프에 전념하겠다며 16세 때 학교를 그만뒀다. 프로 전향 1년 반 만에 150만파운드(약 26억원)을 예금했다. 6년 사귄 여자 친구와의 만남과 이별이 현지 신문에 상세히 보도될 정도로 북아일랜드에서는 이미 '아이돌 수퍼스타'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우즈의 경기를 지켜봐왔고 최고의 선수인 우즈를 메이저대회에서 꺾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우즈가 빨리 부상에서 회복해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고 했다.

 

매킬로이가 '우즈를 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데는 아버지의 희생이 절대적이었다. 아들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도 아버지 게리 매킬로이였다. 전역한 군인이었던 그는 아들의 골프 레슨비를 벌기 위해 오전엔 체육관 화장실 청소부로, 오후엔 골프장 바텐더로, 밤엔 다시 럭비클럽 바텐더로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다. 누구보다 아들의 재능을 확신했던 그는 매킬로이가 15세였던 2004년 '매킬로이가 25세 이전에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할 확률'에 친구들과 함께 400파운드를 베팅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아들만큼은 꿈을 이루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매킬로이의 아버지는 한 번도 아들의 훈련에 간섭한 일이 없었다. 매킬로이가 17세가 될 때까지 아들의 골프백을 메고 캐디로 나섰을 뿐 골프 레슨은 전적으로 코치에게 맡기고 늘 한 걸음 물러서 아들을 묵묵히 지켜봤다. 매킬로이는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내게 골프 연습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했고 아버지는 "레슨비를 버느라 간섭할 여유도 없었다. 뒤에서 마음을 졸인 적도 많았지만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매킬로이의 꿈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부모님과 함께 세계 곳곳의 대회를 다니며 여행하는 것"이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매킬로이는 머리가 하얗게 센 아버지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매킬로이가 US오픈에서 우승한 이날은 미국의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