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무하마드 알리 사망, 복서 은퇴 후 파킨슨병 투병… 애도 물결

랑주아톰 2020. 6.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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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복서 은퇴 후 파킨슨병 투병·세상 떠나기까지애도 물결

1. 무하마드 알리가 고향인 켄터키 주 루이빌의 케이브힐 공동묘지에 묻혔다.

 

20(현지 시각) 알리의 유족과 친척들이 참여한 비공개 가족 행사로 하관식이 치러졌다. 이날 오후 열린 루이빌의 'KFC ! 센터'에서 공개 추도식에는 약 15천명이 참석했다.

 

4시간 진행된 추도식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오린 해치(공화당·유타) 미국 상원 임시의장,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은퇴 풋볼선수 짐 브라운,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배우 우피 골드버그, 농구스타카림 압둘-자바 등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추도식에 앞서 치러진 노제에는 경찰 추산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알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추모객들은 고인이 자란 분홍색 집, 그가 복싱을 배운 체육관, 켄터키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유산 센터, 그의 이름을 딴 '무하마드 알리 대로''무하마드 알리 센터' 등 고인의 숨결이 어린 곳곳에 들렀다.

 

전설적인 미국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지난 3일 별세했다. 무하마드 알리의 사인은 패혈성 쇼크로, 그는 자연적인 상태에서 일어난 패혈성 쇼크로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생명보조 장치를 이용해 일시적으로 투병을 하다가 숨졌다.

 

그는 복서 생활을 그만둔 뒤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무려 32년 동안 병마와 싸웠다. 201412월에는 폐렴, 이듬해인 20151월에는 요로가 감염되는 등 각종 질병으로 편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운동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무척이나 활달하고 말도 많던 알리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변해갔다. 점점 느려지고 말도 줄었으며 나중에는 표정마저도 사라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알리가 선수 시절 머리를 자주 맞아 뇌에 충격이 누적된 까닭에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파킨슨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미국 플로리다대의 마이클 오쿤 교수도 "온전히 유전적인 원인으로 파킨슨병의 걸리는 사례는 10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파킨슨병은 근육을 약화해 기침이나 삼키기 같은 신체기능을 저해하면서 호흡기 질환을 부르기도 한다.

 

알리도 사망하기 전 호흡기 질환 때문에 자주 병원 치료를 받아왔고, 일부 언론은 그가 파킨슨병에 따른 호흡기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2.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알리의 유족은 10(현지시각) 고향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비공개 장례식을 치렀다. 이어 15천여 명의 인파가 참석한 공개 추도식은 ABC·NBC·CBS 등 주요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추도식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전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배우 우피 골든버그,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 등 유명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헤비급 챔피언 알리는 은퇴 후 30년 넘도록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흑인 민권운동과 질병 퇴치를 위한 사회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 3일 폐렴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 악화되면서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알리는 어떤 역경도 자신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라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그는 다양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이도록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큰딸의 졸업식이 겹쳐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수석 보좌관이 대독한 공개편지에서 "나도 알리 덕분에 언젠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었다"라고 전했다.

 

 

알리와의 40년 넘는 우정을 회상한 크리스털은 "그는 가장 어두운 밤에 쳤던 번개와도 같았다"라며 고인의 빠르고 거친 말투와 복싱 흉내를 내면서 추모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알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 그가 복싱을 처음 배웠던 체육관, 루이빌의 '무하마드 알리 센터' 등 고인의 숨결이 담긴 곳을 향한 노제 행렬은 수만 명의 인파가 운구차를 지켜보며 장관을 이뤘다.

 

시민들은 운구차를 향해 꽃을 던지며 알리의 이름을 외쳤고, 주변에 있던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며 알리의 마지막 길을 축복했다. 한 시민은 "알리는 흑인을 넘어 모두의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알리의 관은 약 13만 명이 묻힌 루이빌의 케이브힐 공동묘지에 안치됐고, 묘비에는 소박하게 '알리'라는 이름만 새겼다. 알리는 생전 자신의 장지를 직접 골랐고,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도록 공개 추도식을 열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