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사, 그리고 38㎞ 밖 우토야 섬의 악몽]
1.
이민수용 앞장선 노동당의 꿈나무 캠프 찾아가 경찰복 입고 캠핑 청소년들 불러 모은 뒤 난사우토야오슬로 시내 전체가 흔들… 청사 앞에 화물차 세우고, 원격 조종장치로 터뜨려
그는 악마였다… 숨은 사람들 찾아내 쏘고, 쓰러져 있으면 확인사살도
23일 오후 3시쯤 평소 집권 노동당의 친(親)이민정책을 못마땅해하던 채소농장 운영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이 오슬로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정부 종합청사 앞에 소형 화물차를 몰고 나타났다. 화물차엔 화학비료(총 6t)를 재료로 만든 폭약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는 주위를 살펴 경계가 허술한 점을 확인한 뒤 도로변에 차량을 세워둔 채 안전지대로 물러났다. 잠시 후 원격 조종장치로 기폭장치를 터트렸다. 고막을 찢는 듯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정부 청사와 주변 건물 유리창이 산산 조각났다. 폭발음은 오슬로 시내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났다. 사방팔방으로 튄 건물 파편과 유리 파편에 7명이 즉사하고 수십명이 부상했다.
◆폭탄테러 후 이동해 총기난사
브레이빅은 이어 준비해 둔 차량을 몰고 오슬로에서 북서쪽으로 38㎞쯤 떨어진 티리피요르드호수 휴양지로 향했다. 다음 공격 타깃으로 정한 우토야섬이 있는 곳이다. 이날 우토야섬에선 매년 여름 노동당이 주관하는 청소년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캠프는 14~2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스포츠·정치토론 등으로 진행되며 이번에 600여명이 참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도 이 캠프에 참가해 꿈을 키웠다.
보트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 브레이빅은 정부 청사 테러 소식을 듣고 웅성거리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다가갔다. 일부는 경찰복을 입은 브레이빅에게 다가가 소식을 묻기도 했다. 그는 조금 뒤 청소년들에게 "할 얘기가 있으니 이쪽으로 모이라"고 소리쳤다. 잔디밭 한쪽 구석으로 청소년들이 모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소총을 꺼내 들고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브레이빅은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테러'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결합한 듯한 행각을 벌였다.
◆엽총으로 확인 사살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공포에 질린 채 혼비백산해 섬 전체로 흩어졌다. 브레이빅은 조금도 자비심을 보이지 않았다. 소총과 엽총을 번갈아 난사하며 청소년들을 조준 사살했다. 쓰러진 채 신음하거나 숨진 척 누워 있던 청소년에게 다가가 머리 부위를 엽총으로 확인 사살했다.
50여명은 선착장 쪽으로 달려가 호수에 뛰어든 뒤 육지 쪽으로 필사적으로 헤엄치며 탈출을 시도했다. 브레이빅은 선착장까지 달려가 헤엄치는 청소년들에게도 총탄을 난사했다. 몇 명은 헤엄치던 중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브레이빅, 무서울 정도로 침착
23일 오후 기자가 참극의 현장을 찾았을 때 호수 주변 순볼렌호텔에는 임시 사고대책본부가 차려지고 현장을 탈출한 청소년들이 수용돼 경찰 조사에 응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경찰이 외부인과의 만남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주어진 시간에 호텔 밖으로 나와 세계 각국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 호텔 앞에는 미국 CNN, 영국 BBC, 독일 ZDF 등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 수십명이 진을 쳤고 호텔 앞 호숫가엔 캠핑카 대신 위성 송출 장비를 갖춘 방송사 차량 십여대가 주차돼 있었다.
생존자들과 주민들이 전하는 참상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 청년 노동당원 스틴 레나테 하헤임(27)은 "정부 청사 폭탄 테러 소식을 듣고 불안해하다 경찰이 지키고 있으니 여기는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 요르겐 베노네는 "사람들이 놀라 호수로 뛰어들고 일부는 바위 뒤에 숨고 또 어떤 사람은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는데 범인은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엽총으로 머리에 다시 총을 쏘며 확인 사살까지 했다"고 몸서리를 쳤다. 헤엄쳐 섬을 탈출한 한 소녀는 "범인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해 천천히 섬을 돌면서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총을 쐈다"고 현지 방송 TV2에 증언했다.
브레이빅이 총격을 시작한 지 50여분 뒤인 오후 5시 40분 헬기를 타고 출동한 경찰특공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범인은 경찰 헬기가 섬 주변을 선회하는데도 총기를 계속 난사했다. 경찰이 보트를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희생자는 계속 늘었다. 경찰 특공대가 범인을 제압했을 때 섬은 10대 청소년들의 시신이 널브러진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2. 이슬람·페미니즘 증오로 똘똘 뭉친 '인간
▲ 브레이빅이 선언문에 첨부한 자신의 사진. 그는 군 복무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진 속 군복이 진짜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중세 십자군 원정 당시 종교 기사(騎士) 집단인 템플기사단의문장으로 장식한 훈장과 표지 등은 사제품으로 추정된다. /로이터 연합뉴스 테러범, 범행 2시간 40분전 '2083:유럽 독립선언' 올려
이슬람에 대한 분노 - "무슬림이 유럽 일자리 잠식" 중세 십자군 원정 동경하며 템플 기사단 문장 사용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 - "친구 중 나만 여자친구 없어, 한국·일본 가부장제가 해답" 명품시계·펜 팔아 비용 마련
범행 선언문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테러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최근 2~3년이지만, 20대 초반부터 9년간 무슬림 이민자 유입을 촉발한 유럽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으로 '사상적 배경'을 쌓아왔다. 선언문 제목 '2083:유럽 독립선언'은 오는 2083년까지 유럽 각국이 극우 보수 정권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 무슬림 이민자를 내쫓아야 한다는 뜻으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을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유럽을 탄생시켜 기독교 문화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는 "불충분하게 죽이는 것보다는 많이 죽이는 게 낫다"며 "사람들은 나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거대한 괴물로 부를 것"이라고 적었다.
◆십자군 전쟁 찬양 "무슬림 공격"
그는 보고서 상당 부분을 할애해 유럽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와 문화적 마르크시즘(Marxism)을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극우 성향 책 몇 권과 위키피디아 등을 주로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논문'은 "20세기 초 안토니오 그람시와 에리히 프롬 등 진보·자유주의 학자들이 반(反)유럽주의와 자해적인 인도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시작한다.
고졸인 브레이빅은 유럽 대학들이 '정치적 올바름'이란 미명 아래 유럽 각국 고유의 문화적 자긍심을 깎아내리고 있으며, 이것이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와 무슬림의 유럽 일자리 잠식 같은 '유럽의 무슬림 노예화'를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한편 '무슬림들이 대량 살상 무기를 이용해 저지른 테러'로 2001년 9·11 테러와 함께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나란히 예로 드는 등 체계가 결여된 편집증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38㎞ 떨어진 우토야 섬의 노동당 청소년 여름 캠프장이 22일 광란의 총기 난사로 생지옥으로 변했다. 부상한 청소년들이 구조대와 함께 보트를 타고 우토야 섬을 빠져나와 대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노르웨이의 테러 전문가 토마스 헤가메르는 23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마치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선언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1세기 서유럽이 성지(聖地) 회복을 위해 이슬람권을 공격한 십자군 원정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며 당시 비밀 특수부대였던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의 활약상을 자세히 소개했다. 템플 기사단의 문장으로 선언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으며, 이를 제목으로 범행을 예고하는 12분짜리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02년 영국 런던에서 십자군 운동의 부활을 원하는 극우 인사 9명이 8개 유럽국을 대표해 모임을 가졌는데 자신이 그 일원이었다고 밝혔다.
◆페미니즘 비판하며 "일본·한국처럼 돼야"
브레이빅은 이번 테러 준비에 31만7000유로(약 3억3000만원)가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액수는 "내 돈 13만 유로에 3년간 다른 일을 못한 기회비용 18만7000유로를 더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용 마련을 위해 특히 명품인 브라이틀링 손목시계와 몽블랑 마이스터튁 만년필을 팔았다고 했다. 그는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화학 원료 등을 언제 어떻게 구입했는지, 실험을 언제 어떻게 했는지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또 노르웨이의 중도 좌경화하는 정치에 대한 실망감도 썼다.
그의 선언문에선 성인이 된 후 느낀 개인적 좌절감을 정치 이슈로 확장한 듯한 느낌도 배어난다. 친구들이 동등한 경제권과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여자들과 사귀며 겪는 고민을 실명을 밝혀가며 자세히 소개하고 이를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여권 신장 운동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가부장제 회복이 대안이며 일본이나 한국 모델이 해결책"이라고 하는 식이다. 그는 "친구들 중 나만 여자 친구가 없다. 2011년 8월부턴 어떻게든 여자를 만날 것"이라고 다짐하는가 하면, 군복이나 왕실 예복을 늠름하게 차려입거나 UDT 대원 차림으로 총을 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올려놓기도 했다.
3. "우토야섬 학살자, 예쁜 여자부터 쐈다"학살이 시작된 지 20분이 흐른 뒤, 노르웨이 우토야 섬에는 정적이 흘렀다.
죽음의 고요함이 10분간 이어졌다. 이윽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 테러진압팀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안전합니다. 육지로 돌아갈 고속정이 준비돼 있으니 어서들 나오세요!”
공포에 질려 숨어 있던 10대들이 숲에서, 바위틈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 진압팀을 사칭하며 사람들을 불러낸 그는 살인마 안데르스 브레이빅이었다. 한동안 적막만이 흐르던 섬에 또다시 총성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토르본 베리데(22)는 “경찰이란 소리에 숲 속에 엎드려 있던 30~40명이 자리에서 일어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는 순간 다시 총알이 날아왔다. 필사적으로 달아났고, 가까스로 어느 동굴에 숨어들어 갔을 때 주위에는 6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 우토야 섬 학살 현장에서 한 남성이 브레이빅에게 "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살인마는 웃음과 환호성을 터뜨려가며 자동소총과 산탄총을 난사했다.
주로 자동소총을 쏴 쓰러뜨린 뒤, 산탄총으로 머리에 확인 사살을 하는 식이었다. 산탄총에는 인체 내부에서 폭발해 장기(腸器)에 심한 손상을 입히도록 만들어진 특수탄환(덤덤탄)이 장전됐다.
당시 호숫가에 나와 있었던 니콜린 스키(22)씨는 “총소리가 들리더니 10여명의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비명을 지르며 내 쪽으로 뛰어오길래 나도 일단 바위 뒤로 숨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직후 머리 위로 총탄이 몇발 스쳐 지나가더니 내가 숨은 바위 위로 그 남자가 올라선 것이 느껴졌다. 그는 예닐곱 가지의 환호성을 질러가며 물에 뛰어든 사람들을 쐈다. 그의 숨소리까지 들려왔지만 차마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잠시 뒤, 브레이빅은 등을 돌려 섬 안쪽으로 돌아갔다.
우토야섬 안내데스크에서 근무하던 아드리안 프라콘씨는 “남자를 피해 물로 뛰어들었지만, 도저히 건너갈 자신이 없었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는데 물가에 그가 서 있었다. 나는 ‘제발 쏘지말아달라’고 애원했는데, 그는 뒤돌아서서 가버렸다”고 말했다.
보다 극적으로 화를 면한 경우도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소말리아인 아말 압데누르(17)은 간식을 사러 육지로 나왔다가 섬으로 돌아가는 배를 놓쳤다. 그는 배 출발 시각 2분 전에 도착했지만, 선착장에서 “경찰관 한 명이 테러와 관련해 중요한 일이 있다며 배를 먼저 출발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경찰관’은 브레이빅이었다.
한 생존자는 “섬에 도착한 브레이빅이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가장 예쁜 여자애부터 쐈다”고 말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브레이빅은 사건 전 자신의 일기에 “친구들 모두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만 없다”는 불평을 적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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