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외도
사라왁 왕국은 19세기 중반 영국 모험가 제임스 브룩이 말레이제도 보르네오섬에 세운 나라다. 19세기 말 영국 보호령이 된 사라왁엔 '잠자는 사전(Sleeping dictionary)'이라는 관습이 있었다. 독신으로 부임한 영국 외교관이나 군인이 원주민 여인에게 그곳 언어와 풍습을 배우는 제도다. 말 그대로 여인과 잠자리도 함께하지만 본국으로 돌아갈 땐 남남이 된다. 이 제도는 2002년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외교관들은 되도록 빨리 주재국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정보원을 확보하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잠자는 사전' 같은 제국주의 관습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외교전(戰)에서 여자는 함정이기 십상이다. 2004년 상하이 총영사관에 근무하던 일본 외교관이 자살했다. 현지 여인과 관계를 맺고 있던 그는 중국 정보기관으로부터 "기밀을 내놓지 않으면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2009년 러시아에선 영국 외교관이 거리 여자와 놀아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영국은 "러시아가 놓은 덫에 걸린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외교관은 높은 수준의 공적·사적인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 외교관을 파면했다. 1993년 네팔에 근무하던 북한 참사관은 여러 여자와 관계하다 불륜 사실이 현지 신문에 보도됐다. 한 여자가 그에게 결혼하자고 했다가 거부당하자 "고소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우리 외교관 중에도 부임지에서 여성 편력이 드러나 옷을 벗은 사례가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외교가에선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쉬쉬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상하이 총영사관의 영사 3명이 한 중국 여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은 '불미스럽다'는 단어를 훨씬 뛰어넘는 사건이다. 거기에 총영사와 부총영사 사이 다툼까지 얽혀 있었다니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었던 셈이다.
▶외교관의 24시간은 주재국 정부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외교관들은 스스로 "어항 속 물고기 신세"라고 말한다.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은 그런 처지도 잊은 채 중국 여성 한 명과 삼각관계에 휘말렸다. 중국은 어항 속에서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던 이들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국가가 이들에게 부여한 임무는 '외교(外交)'지 '외도(外道)'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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